[의열단100주년]목숨 바친 항일 투쟁…잊혀져만 가는 영웅들

2019-08-10 18:46:29 by 허태갑기자 기사 인쇄하기


조선의용대 성립기념 사진. 조선 의용대는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 등이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든 독립운동부대다. 이후 조선의용대원 일부는 조선의용군으로, 다른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했다. 2019.06.19. (사진=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서울=IBS중앙방송】허태갑기자 = 1919년 11월10일 중국 지린성에 있는 농부 판씨 집에서 김원봉을 비롯한 13명의 청년이 모였다.

고향을 떠나 낯선 대륙에 모인 청년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하며 밤새 뜨거운 회의를 이어나갔다.

청년들은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해 신명을 희생하기로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공약 10조'와 함께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칠가살·七可殺)과 '다섯 가지 파괴'(오파괴·五破壞)를 선정하고 곧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섰다.

이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올해 창단 100주년을 맞은 조선의열단이다. 의열단은 우리 항일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단체다. 특히 일제가 조선을 침략한 뒤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으로 명성을 날렸다.

일제는 이들에게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단장(의백·義伯)이었던 김원봉의 목에만 100만원이라는 거액이 달렸다. 현재 가치로 약 32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의 현상금(60만원)보다 더 높은 금액이다. 일제는 의열단을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의열단의 의열활동은 1929년 상해에서 해산하기까지 알려진 것만도 34건에 달한다. 경찰서와 수탈기관 폭파는 물론이고 고위 장교 및 경찰서장 등 고관들을 저격하는 한편, 도쿄에서는 일왕 궁서에 폭탄을 투척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또 독립운동을 방해한 밀정들의 암살 임무를 맡기도 했다.

의열단은 해단 이후에도 무장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쳐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등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독립무장부대였던 조선의용대는 사실상 의열단의 후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원봉이 대장을 맡고 의열단원이었던 김성숙, 유자명, 이춘암 등이 지도원으로 추대됐다. 조선의용대는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독립군인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돼 조선의 독립을 준비한다.

◇이름도 남김 없이 스러진 의열단원들

 

약산 김원봉. (사진=KBS 캡쳐)

의열단의 이 같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인물이나 규모 등에 대해서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비밀 항일결사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열단의 규모에 대해서 현재 많게는 1000명에서부터 적게는 100명 안팎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경무국 첩보를 보면, 의열단원 숫자를 200명 안팎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또 영국에 보고된 1923년 SIS 극동지부 보고서는 의열단원을 약 2000명으로 추산하고, 도쿄에도 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미국 여류작가 님 웨일즈는 의열단원이었던 김산을 인터뷰해 쓴 소설 '아리랑'에서 1927년까지 체포돼 처형당한 의열단원이 700명에 달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의열단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최근 영화로 개봉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봉오동전투'에는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참전했다. 기록에 따르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은 총 3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비롯한 투쟁 과정에서 이름도 없이 희생됐다.

그동안 일본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박열 선생이 의열단원이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의 재판 기록도 최근에야 발견됐다. (뉴시스 7월20일 보도 <박열 "의열단과 관계 있다…내 사상 일치해 제휴" 日재판기록 첫 발견> 참고)

박열 선생은 1923년 도쿄에서 일왕(日王)과 왕세자의 처단을 기도했다가 일제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은 인물로, 2017년 이준익 감독이 영화 '박열'을 제작해 재조명 했다.

의열단을 연구한 서적조차 드물다. 약산 김원봉 평전과 박열 평전 등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달 '의열단, 항일의 불꽃'이라는 책을 폈다. 김 전 관장은 출판 전 뉴시스와 만난 자리에서 "책을 쓸 당시 의열단에 대해 쓴 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창단 100주년 재조명 작업…정부 지원 '절실'

민간이 추진하는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지난달 9일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의열단으로 활동한 약산 김원봉, 윤세주 등 밀양 출신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을 되살려낸 대중가극 '약산아리랑' 공연
추진위는 의열단 창단일에 맞춰 오는 11월9~10일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청년과 여성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문화·예술 공연 등을 계획하고 있다.

또 100주년 기념식 준비기간 의열단 특별전시 및 사진전, 의열단 100년사 화보집 발간, 상설 홍보부스 등을 통해 의열단원들의 활동과 공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한국과 중국에서 학술대회를 열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의열단원들을 재조명하고 자료 등을 발굴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광주·대구·대전·부산 등 전국 4대 도시에서 의열단 특별 전시를 이어가는 한편, 의열단 관련 영화 상영회와 알려지지 않은 의열단원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구성한 독립 뮤지컬 '의열단 아리랑' 공연 등도 구상 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일을 위한 펀딩조차 쉽지 않다. 정부는 올해 3·1절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지만, 의열단에 대한 지원은 요원하기만 하다. 추진위측은 지난해부터 올해 발족을 염두에 두고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에 협조를 요청해왔으나 별 진척이 없는 상태다.

최근에는 김원봉 서훈 논란까지 일면서 항일단체인 의열단 활동까지 '빨갱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사실상 지원을 포기한 듯 더욱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추진위는 이번 행사를 국민 후원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원웅 광복회장 겸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공동추진위원장은 "조선의열단의 구성원들은 목숨을 건 무장투쟁주의자이자, 굉장히 순도 높은 민족주의자들"이라며 "투쟁 방법에 의견이 달랐을 수 있어도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의열단에는 약산 김원봉뿐 아니라 조선혁명(의열단선언)을 쓴 단재 신채호, 민족시인 이육사, 민족음악가 정율성, 김상옥 의사, 나석주 의사 등이 있다"며 "조선의열단을 빼면 우리 독립운동사는 빈약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가 설립 100주년이기 때문에 국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추진하기 위해 여러가지 펀딩도 노력하고 있다. 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바랐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순수하게 100주년을 기념하기로 했는데 이념적 잣대로 바라봐지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press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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