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이돌 소비문화 바뀌어야"···다양성 존중 필요

2019-10-16 20:08:46 by 정 연기자 기사 인쇄하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IBS중앙방송】정  연기자 = 그룹 'f(x)' 출신 배우 설리(25·최진리)가 지난 14일 세상을 안타깝게 등진 이후 아이돌 소비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팝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주축이 된 아이돌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돼 왔다. 하지만 이미지가 끊임없이 소비되며 물리적, 정신적인 상황이 코너로 몰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여성 아이돌에 대한 이미지가 과도하게 희생되거나 왜곡돼 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설리가 단적인 예다.

설리는 화려한 외모로 주목 받았지만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자 했다. 계속해서 '예쁜 아이돌'로 소비하려는 대중의 욕망에 맞서 자신의 신념, 생각을 꾸준히 밝혀왔다. f(x)는 K팝 신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그룹이었지만 이미 한계가 그어진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설리는 튀는 아이돌이었고, 팀 탈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일부 대중은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설리에게 과도하게 악의적인 악플을 달았다. 그런데 설리가 처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을 일부 악플러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

부끄럽지만 언론들도 큰 잘못이다. 설리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사진, 글을 자극적으로 편집 또는 왜곡해 인터넷에 뿌렸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가감 없이 담은 사진과 악플러들에게 저항의 의미로 올린 글들이었다.

연예매체뿐만 아닌 메이저 언론들도 온라인 판 등을 통해 클릭 수를 위해, 자극적으로 설리를 소비했다. 아이돌은 악플과 자극적인 기사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식에 암묵적으로 상당수가 동의했다.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설리 뿐 아니라 다른 여성 아이돌들은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여성 아이돌은 이해 못할 상황에 계속 처했다.

그룹 '에이핑크' 손나은은 휴대전화 케이스에 적힌 문구 '걸스 캔 두 애니싱(Girls can do anything)' 때문에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여성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의 이 문구가 페미니즘을 연상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친 이들의 과도한 행위였다. 

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은 작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과도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레드벨벳의 일부 팬들은 그녀에게 실망했다며 아이린 굿즈를 훼손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가요계에서는 일부지만 이런 네티즌들의 태도가 아이돌을 무성의 상품화 취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이돌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기획사 관계자는 "손나은, 아이린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행동은 황당할 정도로 비상식적이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우려스런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이 작은 사안에도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기계적인 답변만 하게 만들 수 있다. 작은 논란도 피하고 싶은 소속사에서도 이를 요구할 수 있다. 아이돌에게 정치적 올바름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인 입장을 낼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아이돌은 자유를 누리는 대신 끊임없이 자기 검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데뷔 21년차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은 설리를 애도하며 "더 많은 매체들과 더 많은 연예인들이 생겨나며 서로에게 강요받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먹지도, 편히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길 바라는 어른들이 넘쳐나고 있다"며 가혹해지고 있는 아이돌 업계에 우려를 표했다.

"많은 후배들이 돈과 이름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얼마만큼의 마음의 병을 갖고 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최근 이런 일련의 상황에 따라 뒤늦게나마 아이돌 소비문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류가 급부상하며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까지 앞장서 K팝 문화 부흥과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그 주인공들의 내면을 톺아보다는 데는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아이돌이 한류 간판이 되면서 인성 교육 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각자 심리 상태를 파악하지 않은 규칙 강요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중견 기획사 관계자는 "한류의 이미지가 중요해지면서 조금이나마 튀거나 기존 아이돌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무조건 억누르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면서 "각자 개성을 존중해야 좀 더 건강한 아이돌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겠냐"고 했다.
 
인성 교육 못지않게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빠른 속도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는 한번 바람을 타면,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몰아 붙인다. 한류도 마찬가지다. 설리처럼 개성 강한 아이돌은 튀는 아이돌로 치부하고, 걸그룹 멤버에게는 '예쁜 이미지로 소비되기'만을 암묵적으로 요구해왔다. K팝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페달을 밟기보다 한번쯤은 브레이크를 밟고 돌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아이돌 업계를 20여년간 지켜봐온 관계자는 "K팝 아이돌이 규모적인 측면에서 무섭게 성장해왔지만 안에는 여러 부분이 곪아있다"면서 "'산업을 더 키운다'는 미명 아래 업계와 사회, 미디어 등이 암묵적으로 모른 척 해온 어두운 부분이 있다.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이 지금 필요하다"고 짚었다.

press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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